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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즈오 이시구로의 '남아있는 나날'은 한 시대의 초상을 그려낸 작품입니다. 1930년대, 2차 세계대전의 그림자가 드리우던 격변기에 있는 영국을 배경으로 합니다. 전쟁이라는 상처는 아물었지만 흉터는 아물지 않은 공간이었습니다.  패전국 독일과 승전국인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  외교적 다리 역할을 했던 달링턴 가문. 그곳은 비공식적 물밑 외교가 벌어지는 그런 장소였습니다. 때로는 땀이 흐를 정도로 긴장감이 흐르기도 했고, 유쾌한 농담이 오가는 은밀한 장소이기도 했습니다. 

 

 

 

위대한 가문에서 집사로 일하는 스티븐슨을 통해 한 개인이 어떻게 자신의 신념과 책임을 선택하고, 그 선택이 가져오는 결과를 감내하는지를 보여줍니다. 스티븐스는 완벽한 집사로서의 의무와 '품위'를 지키기 위해  감정을 절제하면서 살았습니다. 위대한 집사로서의 성공법칙은 감정의 절제와 억제였습니다. 6일간의 여행을 통해 그는 잃어버린 시간과 놓쳐버린 사랑, 그리고 잃어버린 품위에 대한 뼈아픈 후회가 몰려옵니다. 완벽한 집사 스티븐스의 삶을 통해 인간 존재의 본질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스티븐스는 '품위' 와 품격을  최우선 가치로 생각합니다.  완벽한 집사로서의 의무를 위해 개인적인 감정은 철저히 억누릅니다. 그가 끝까지 고수했던 전통적인 가치관은 주인에 대한 헌신, 철저한 자기 통제로 압축할 수 있습니다.

 

달링턴 경의 유대인 하녀를 해고하는 친나치적 행동에도 불구하고 그의 곁을 지키며 로봇처럼 명령을 수행합니다.  켄턴 양과의 미묘한 사랑의 흐름에도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심지어 아버지의 임종 앞에서도 감정을 절제하고 자신의 집사로서의 임무에만 충실합니다. 어찌 보면 그의 가치관은 철저한 의무와 복종 때문에 질식당할 정도에 이릅니다. 

 

6일간의 자동차 여행은 그에게 인생의 전환점이 됩니다. 고리타분한 달링턴 홀에서의 신념은 하나둘씩 허물어져 갑니다.

여행 중 만나는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 자신의 삶이 다람쥐 쳇바퀴도는 것처럼 얼마나 단조롭고 제한적이었는지를 깨닫습니다.  과거를 회상하며 켄턴 양과의 관계를 되짚어보고, 달링턴 경과의 관계를 통해 자신의 신념과 선택에 대해 고민을 거듭합니다. 그의 위대한 어른이 나치 지지자였다는 진실앞에서 콘크리트처럼 공고했던 명분과 신뢰는 허무하게 무너져 내립니다.

 

 

켄턴 양에 대한 사랑의 감정은  "그녀의 목소리는 마치 오래된 악기의 떨림처럼, 희미하지만 분명하게 내 마음을 울렸다."라고 극적으로 표현하지만 켄턴 양은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습니다. 스티븐스의  또 다른 혼잣말 .  "나는 그녀에게 내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하지 못했다. 그것은 나의 어리석음이었고, 나의 후회였다."는 그의 내면적 갈등과 후회를 생생하게 전달합니다.

 

 

스티븐슨은 여행 막바지에 이르면서   자신의 어긋난 사랑의 감정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남아있는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고민합니다. 스티븐스의 후회는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후회 없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 현재의 자유 의지의 중요성을 말해줍니다. 동시에  완벽한 삶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우리는 때때로 실수를 저지르지만 그것을 통해 배우고 성장해야 함을 깨닫게 됩니다. 책을 통해  자신의 삶을 성찰해보고, 앞으로 남은 나날을 어떻게 살아갈지 고민해 보는 시간. 아직 남아있는 나날이니까요. 

 

 

 

사족, 작품의 시대배경 

1차 세계대전 이후, 패전국 독일은 베르사유 조약으로 인해 막대한 배상금을 물어야 했고, 이는 독일 국민들의 불만과 분노를 야기했습니다. 이러한 사회적 혼란 속에서 나치즘이 등장했고, 히틀러는 독일 국민들의 지지를 얻어 권력을 장악했습니다. 영국은 이러한 독일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며 외교적 노력을 기울였지만, 결국 2차 세계대전의 발발을 막지 못했습니다. 프랑스는 1차 세계대전의 피해를 복구하고 독일의 재침을 막기 위해 노력했지만, 독일의 군비 증강을 막지 못하고 결국 독일에 점령당했습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스티븐스는 달링턴 경의 친나치 성향을 목격하며 자신의 신념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합니다.

 

 

가즈오 이시구로는 2017.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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